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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4

-Jay 2017. 7. 14. 17:10

00.

생각을 텍스트로 정리하는 것이 좋다고하여 일기장을 만들었다. 손글씨로 쓰는 것도 좋아하지만 좀처럼 연필을 잡고 쓰는 훈련이 되지를 않아서 한두번 하다가 포기하기 때문에 이곳에 만든다.


01.

어제밤에 어머니와 함께 술을 마시고 또 한번 말을 꺼냈다. 나는 이번주 토요일에 서울을 갈 것이다. 퀴어퍼레이드에 가고 싶다고. 퀴어라는 단어도 모르는 어머니에게 설명하니 질색을 하신다. 어머니는 내가 그런 사람이면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기함을 토하셨다. 내가 정도를 걷기 바란다고 이야기하셨다. 이미 출발점이 다른데, (출발점이 다르다고 하면 이또한 이상한 발언일까? 어쨌든 다 같이 사는 세상이니까. 하여튼.) 이 길이 내가 걷고 있는 곳이고 내가 걸을 길인데 다른 사람들처럼, 다수처럼, 그렇게 살기를 바란다고. 그 길은 내가 걸을 길이 아닌걸 아는데. 그렇게 나를 감추고 그렇게 살아야한다면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 걸까? 그렇게까지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까? 나는 지금 당장 그 답을 찾을 수가 없는데. 그렇게 살라고 말한다면 나는 어머니를 떠나 독립할 것이다. 언제가 되었든지. 내 길을 걷든지 그전에 아예 걷는 것을 포기하던지. 


02.

나는 성소수자다. 아직 정확하게 무엇이다, 라고 확언을 내릴 정도로 나 자신에 대해서 알지는 못하지만. 내가 비록 연애를 해본 적은 없어도 누군가에게 호감을 가질 수는 있다. 가진 적은 있다. 나는 그것이 호기심이 아님을 안다. 나는 누구와도 사귈 수가 있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사실 이 범주에 대한 이해가 아직 부족해서, 나 자신을 양성애자인지 범성애자인지 구분하는 것은 몹시 어렵고, 섹슈얼리티로는 무성애 쪽이 좀 더 가깝지 않을까. 성적끌림을 경험해 본 적은 없으니까. 계속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 중이긴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절대 다수 헤테로는 아니라는 점만은 확실하다. 스스로 남자인지 여자인지, 이 지정성별이 나의 성인지 조차 확언하지 못하겠는데. 그것만은 확신하는데, 어제 나는 그것을 부정당했다. 


03.

어머니는 내가 어머니를 닮았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어머니를 모르겠으니 정말 닮았을까 싶지만, 언뜻언뜻 비슷하다고 여기기는 한다. 나는 어쨌든 그녀의 아래에서 자랐으니까 닮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는 나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어머니의 불안은 인정한다. 내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것. 나도 나를 모르겠는데 뭐.


04.

우울. 자해. 자살에 대한 상상. 나는 분명히 몇개월 전에 어느 정도 그들에게 드러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보기에 평소와 다름이 없으니 조금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분명 내가 동성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는데 이제서야 그에 대한 반응을 보여주시는 것만 봐도 그렇지. 하긴, 그때는 좀 어영부영 이야기가 끝났으니까. 아니 이것은 내버려두고 나의 우울. 왜 알려고 하지를 않을까? 힘드니까. 다같이 힘드니까. 근데 난 한번도 드러내고 매달려서 힘들게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아닌가? 


05.

스스로 반팔 반바지 입는 것을 두려워했다. 왜냐면 자해로 인한 흉터가 있으니까. 근데, 한번, 두번, 아무리 드러내도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그냥 입기 시작했다. 가끔씩 감추고 싶어지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당장 어제 생긴 흉터가 있어도 신경쓰지 않더라.


06.

나의 우울에 대한 근원을 묻는다. 근데 그건 나도 모르겠어. 어느 순간부터 끔찍하게 외롭고 혼자 소외되어서 아무 관계에도 용기를 가질 수 없는 상태였고. 인간관계에 대해 욕심은 있다. 외로우니까.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도 있다. 근데, 먼저 손을 벌리고 다가가기 무섭다. 나를 싫어하고 밀어낼까봐. 아주아주 가끔씩 만나서 반가워하는 그들의 모습으로도 만족스럽다. 만족할 수는 없지만 기쁘다. 그것만으로 연명한다. 그렇게 살아온지 적어도 8년, 정도 되지 않았을까. 중학교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내 우울이 심화된 것은 어디서도 위로 받을 수 없었던 고등학교 기숙사 시절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기는 한다. 인간관계에 스트레스를 받는데 그것이 24시간, 1년 내내 이어지니까. 난 모르겠다. 이게 우울한 건가? 무엇인가가 즐겁기는 하고, 하고 싶은 것도 있고, 연극이나 뮤지컬, 문화생활도 즐겼고. 그냥 모두가 느끼는 그런 감정이 아닐까 계속 고민한다. 근데 혼자 고민해서 뭐해. 그래서 나에 대해서 알고 싶을 뿐인데. 정신과 상담이 그렇게나 거부감이 들 문제일까? 물론 보험이 하나도 없어서 정신과 상담받고 나면 보험들기 어려우니까 고민하는건 알겠는데. 그럼 그에 대해 이야기해주면 좋을텐데. 나도 맨정신에 물어볼 정도로 용기있는 건 아니라서 진전이 없는 것이지만. 가끔씩 이러다 죽지는 않을까 고민하기를 4년째이다. 어쨌든 어떻게 계속 살아있으니까 심각하게 생각하지를 않겠지. 나 자신조차도 그렇게 어영부영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거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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